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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joon's Blog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미국 시애틀의 재향군인병원에서 참전용사를 위한 공연이 열렸습니다. 이 공연의 기획자는 당시 유명한 희극배우 '지미 듀랜트'를 섭외하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여 분 단위의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던 지미 듀랜트는 참가를 쉽게 허락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내 일정은 이미 가득 차 있습니다. 고작 10분 정도밖에 시간을 낼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괜찮습니까?" 그러나 기획자는 그가 와준다는 것만으로도 아주 기뻐하며 그의 출연을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공연 당일 약속을 지킨 지미 듀랜트는 위문 공연의 무대 위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그는 짤막한 원맨쇼를 끝내고 나서도 무대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공연을 즐겁게 관람하는 참전용사들은 당대 최고 코미디언의 ..
미식축구 선수였던 '크리스 스필먼(Chris Spielman)'은 강하고 억센 라인배커(line backer)로 활약했으며 현란한 몸동작과 열정 때문에 미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미식축구 선수였습니다. 그런 그가 1998년 시즌이 되기 전, 돌연 1년간 경기에 불참할 것을 선언했습니다. 유방암 진단을 받은 그의 아내 스테파니(Stefanie)를 돌보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미식축구 선수로서 최전성기에 있었지만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라면서 더는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약속했어요. 당신이 아프면 내가 병원에 데려갈 것이며, 내가 당신의 손을 잡아줄 것이며, 내가 아이들을 돌볼 것이라고요. 그 약속을 지켜야 해요." 안타깝게도 그의 아내는 결국 숨을 거두었지만, 그녀가 하늘나라에 ..
저희 아버지는 참 순수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너무 철석같이 믿고 잘 받아줍니다. 하지만 베푼 은혜가 돌아오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오래전 저희 집에 큰 사건이 터졌습니다. 사업을 시작하는 아버지의 죽마고우에게 아버지가 큰돈을 빌려주시게 되었는데 그 친구분은 몇 년 안 되어 사업에 실패하게 되었고 잠적해 버린 것입니다. 그 때문에 저희 집은 오랫동안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저라면 그 친구분을 원망하며 고소를 했을 겁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친구분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어머니는 본인보다 더 속상해하셨습니다. "당신은 왜 항상 속고만 다녀요? 지금 우리 삶도 빠듯한데 무슨 여유가 있다고 친구한테 그렇게 큰돈을 빌려주었어요. 이제는 친구들과 인연 끊고 살아요." 하지만 아버지는 여전했습니다. "아니야, 지..
공자가 나라에 관리로 일하고 있는 조카 '공멸'에게 질문했습니다. "네가 일하며 얻은 것은 무엇이며 잃은 것은 무엇이냐?" 공멸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습니다. "제가 얻은 것은 한 가지도 없는데 잃은 것은 무려 세 가지나 있습니다. 첫째, 아직 제가 많이 부족하여 해야 할 공부가 많은데 일이 너무 많아 공부를 제대로 못했고 둘째, 보수가 너무 적어 부모님을 봉양하기도 어렵고 주변 사람들을 대접하지 못해 평판이 나빠지고 있습니다. 셋째, 관리 일이 너무 바쁘고 시간이 없어서 매일 늦은 시간까지 일해야 하다 보니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공자는 공멸과 같이 관리로 일하는 제자 '자천'에게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 질문에 자천은 대답했습니다. "잃은 것이라니요?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얻은 ..
[2020.01.28. 화] 주요신문 헤드라인 《경 제》 ☞ 연휴 짧아졌지만 설날 세뱃돈 수요↑, 새 지폐 교환건수 7,090건...한국은행, 설 연휴전 자금 5조5,953억원 방출...설 연휴기간 4일로 줄었지만 설 보너스, 세뱃돈 수요 크게 증가 ☞ 한국 무역적자국 1위는 여전히 '일본'…적자액은 16년만에 최저...작년 대일 무역적자 191억달러…수입 12.9%·수출 6.9% 감소 "日수출규제에도 국내 생산차질 없어…한국보다 일본이 더 타격" ☞ 재정 의존한 '소주성'의 민낯…민간 기여도 0.5%P 그쳐...복지 확대에 정부 소비만 늘어...명목GDP 증가율 1%대 그칠듯...정부 "반등 계기 마련" 자화자찬...전문가들 "기업 투자 유인해야" ☞ 지도부 바뀐 한국노총, 강경 투쟁…'광주형일자리' ..
일제 강점기, 일본이 조선인에게 실시한 교육은 우민정책이라 불리는 교육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지식만 가르치고 불평불만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전국 곳곳에 서당 열풍이 불었습니다. 1911년부터 6년 사이, 14만여 명의 서당 학생들이 26만여 명으로 갑자기 늘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초등교육 대상의 70%가, 일본 교사가 가르치는 보통 학교가 아니라 서당에서 공부하고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일본에서는 그런 서당을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일본 경찰과 교사들이 서당을 급습하고 학생들을 끌고 가 강제로 감금했으며 체포된 훈장님들은 모진 고초를 치러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조선의 서당 교육열은 뜨거웠습니다. 어떤 훈장님은 학생들과 산속에 숨어 아이들을 가르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