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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joon's Blog
일제 강점기, 일본이 조선인에게 실시한 교육은 우민정책이라 불리는 교육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지식만 가르치고 불평불만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전국 곳곳에 서당 열풍이 불었습니다. 1911년부터 6년 사이, 14만여 명의 서당 학생들이 26만여 명으로 갑자기 늘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초등교육 대상의 70%가, 일본 교사가 가르치는 보통 학교가 아니라 서당에서 공부하고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일본에서는 그런 서당을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일본 경찰과 교사들이 서당을 급습하고 학생들을 끌고 가 강제로 감금했으며 체포된 훈장님들은 모진 고초를 치러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조선의 서당 교육열은 뜨거웠습니다. 어떤 훈장님은 학생들과 산속에 숨어 아이들을 가르쳤고,..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동에 있는 조선 시대의 비석으로, 사적 제101호로 지정되어 있다. 내용은 1636년 청나라의 침략 행위와 청나라에 항복하게 된 경위를 청나라 측 입장에서 미화하여 기록한 것이다. 따라서 식민사관에 입각한 내용이 많은 일제강점기의 역사 관련 자료들과 마찬가지로 교차검증이 필수인 기록물이기도 하다. 같은 내용을 두고 앞면에는 만주 문자(좌)와 몽골 문자(우)로, 뒷면에는 한문으로 새겨놓았기에 로제타 석처럼 17세기 세 나라의 언어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1637년 2월 24일, 남한산성에 고립되어 있던 조선 왕 인조는 청 황제 태종 앞에서 삼배구고두로 항복하고 가까스로 한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직후 청나라는 병자호란에서 선봉으로 활약한 마푸타를 통해 인조의 항복을 받은 자리에..
독립선언을 주도하고 독립 선언서에 서명한 민족 대표 33인 중 한 분인 홍병기 선생님. 서울 종로구 재동에서 창신동까지 홍 부자 집 땅을 밟지 않고 갈 수 없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의 많은 재산이 있었지만, 독립운동을 위해 재산을 모두 사용한 분입니다. 이런 위대한 분의 손자인 홍재만 씨는 어린 시절부터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가난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13살 어린 시절부터 금속공예 공방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먹고 자야 했습니다. 일을 배우면서 거친 선배들의 폭력에 시달렸습니다. 항상 배가 고팠으며 피곤해서 화장실에 숨어 잠을 자다 들켜 엄청난 곤혹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시간이 흘렀습니다. 성인이 되면서 힘이 붙고 기술이 붙었습니다. 어느 날 보니 심부름을 하던 꼬마가 기술자가 되었습..